나의 애송시(1)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
북치는 소년
김 종 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정말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왠지 허전해 올 때 이 시를 암송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 온다. 사실 오늘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누군가 신경을 건드려 온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쐬주라도 병채 들이키고 싶었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 술은 수명을 단축시키는 독인 줄을 잘 아는지라 술대신 시를 마시기로 하였다.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을 가만가만 외웠다.
처음에 나는 이 시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목은 왜 <북치는 소년>인지 그것부터....... 천상병 시인 못지 않게 술을 좋아했던 김종삼 시인인지라 술에 취해 횡설수설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무렵 길을 가다가 번쩍 이 시의 의미를 깨달았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들리는 북소리 라파밤바......
바로 <북치는 소년>. 그리고 김종삼의 시가 떠올랐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아니 이건 나를 두고 하는 소리렸다. 꿈은 야무지고 이쁜데 제기랄! 괜찮은 시인반열에도 못 들지, 유명인사 축에도 못 끼지, 아랫것들 맞먹으려 팍팍 기어오르지, 내용 없는 빈깡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구나 삶의 고비에서 이런 허탈감을 맞을 것이다. 김종삼은 그래도 빈깡통이라 표현보다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다소 점잖게 표현했지만 말이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깨닫고 나니 그 다음 구절부터는 자동으로 술술 풀렸다.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나라의 크리스마스카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야말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양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가 사치스런 시인에게야 무지개로 보이겠지만 양의 입장에서는 정말 귀찮고 지겨운 것이 아니겠는가? 내용 없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로 가득 찬 이 시가 실은 김종삼의 빈정거림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지나가던 아가씨들이 화들짝 놀랐지만 나는 너무나 통쾌했었다. 일종의 자학이었겠지만 묘한 쾌감이 일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을 나의 애송시 1번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김종삼 시의 매력은 대개 내용없는 아름다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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