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스크랩] 나의 애송시(3)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장자와노자 2011. 5. 24. 12:26


   이국적인 정서와 어우러진 북국의 사랑
              

시의 꽃은 역시 戀歌가 아닐까 한다.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우리들의 삶에서 사랑을 빼버린다면 남는 것은 삭막한 사막뿐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우리의 삶을 꾸며주는 아름다운 무지개인 것이다. 물론 우리가 희구하는 그러한 사랑이 현실에 있는 것인지 나는 자신하지 못한다. 현실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고된 삶을 다독거리는지도 모른다.

20대 청년 시절에 나는 당시 유행처럼 애송되던 유치환의 <편지>나 <그리움> 같은 시를 카드나 편지에 인용하곤 했던 것 같다. 유치환은 <바위>나 <생명의 書>에서 보는 것처럼 강한 의지의 시인으로 우리에게 인식되고 있지만 기실 그는 애상적인 시인이다.
그가 <바위>에서 두 쪽으로 깨어져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정에 흔들리기 쉬운 인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시조시인 이영도를 깊이 사랑했던가 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 보다 행복하네라' <편지>란 시에 나오는 이 구절은 당시 청춘 남녀들에게 꽤나 회자되던 말이었다. 그리고 '파도야 어쩌런 말이냐!'로 시작되는 애끓는 그리움은 꿈 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러나 최근에 나는 백석의 다음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유치환의 연애시가 남국적인 정서라면 백석의 이 연애시는 북국의 정서를 담고 있다. 나타샤란 이름에서 연상되는 이국적인  정서가 눈내리는 정경과 함께 조용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 없이.

이 시에 나오는 나타샤는 김자야라고 한다. 김자야는 당시 꽤 이름있던 기생이었는데 백석이 함경도 영흥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만나 4년 정도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백석은 고향에 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살림을 차릴 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자야는 해방후 서울에서 요정을 해 큰 성공을 했는데 1,000억대의 재산을 모두 법정스님께 기증을 하겠다고 했다. 법정스님은 고민 끝에 그 재산을 받아 사찰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자야는 그 사찰에 기거하다가 90년대 후반에 사망하였다. 김자야는 죽기 얼마 전 <내 사랑 백석>이란 회고록을 내었는데 거기에 백석과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니 아깝지 않으냐고 기자가 묻자 그 재산이란 것이 백석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고 대답했다 전해진다.

백석은 김자야와 헤어져 만주에 가 있다가 해방 후 북으로 갔다. 최근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백석은 1995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그의 연인이었던 김자야와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셈이다. 이승에서 못다 나눈 사랑을 그들은 시방 하늘에서 원없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처 : 내 마음 속 너도밤나무숲
글쓴이 : 나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