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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명의 충돌세계화 2009. 6. 18. 23:30
Ⅰ. 문화의 세기
1980년대 말 공산세계가 무너지면서 40여 년 간 지속되었던 냉전체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 세계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보면서 환호하고 열광했다. 사람들은 냉전의 종식이 가치관의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 간의 갈등은 이제부터 수면위로 터져 나올 것”이라고 새뮤얼 헌팅턴은 주장해서 전 세계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보는 냉전시대는 ‘노동과 재화의 가치를 보는 시각’에 중심을 둔 이데올로기의 대립 시대이자 idealogy의 시대였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본주의와 소련을 필두로 하는 공산주의 각각의 경제적 기치아래 모여든 나라들은 서로 협력했다,
그러나 냉전체제 붕괴 후 ‘경제적 가치’ 대신 ‘경제 외적 가치’가 세계를 움직여 가는 화두가 될 것이라 보고 그동안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억눌려 역사 흐름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던 문명 간의 갈등이 이제부터 수면위로 터져 나올 것 이라고 전망했다. 냉전 종식 바로 그 순간부터 분출이 시작되는데 그동안 억누르는 힘이 강하고 억눌려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분출도 힘찰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런 그의 관점의 뒷받침 하듯이 타문화간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슬람 신비주의, 카톨릭과 개신교의 대립 등과 같이 동류문화에서도 갈등이 발생하며 그 정도도 심화되고 있다.
과거의 세기가 ‘경제적 가치’에 따라 대립한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다면,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동조화를 이룬 지금은 서로 다른 문화에 기초한 문화의 세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현재 ‘문화의 세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문화란 무엇이며 문화의 충돌이 가져올 결과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탐구하는 것이 미래를 대처하기 위해서 꼭 필요할 것이다.
Ⅱ. 문화의 정의
문화는 Value system과 Belief system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먼저 Culture는 라틴어 Colo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Colo는 ‘경작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에 미루어 보면 가치관은 ‘심어지는 것’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대중에게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권력자이다.
권력자가 대중들에게 가치관을 심어주고 이는 행위 판단의 기초가 되고 더 나아가 한 사회를 이루는 축을 구성한다. 왜 권력자는 특정한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인가? 이는 권력자가 대중을 조종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예를 들어 인간사회에서 가장 금기시 되는 것은 Homicide 이다. 왜 동족살해가 인간에게 죄악시 되었을까? 동족살해는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큰 문제이다. 동족살해가 성행하게 되면 자신의 부를 생산할 노동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권력자는 동족살해를 금기시 하고 더 나아가 동성애도 죄악시 하는 가치관을 대중에게 주입하였다. 왜 우리사회에서 동성애가 비판을 받는가? 과거에는 동성애가 권고 되던 시절도 있었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동성애는 노동력 창출의 효과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동성애가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에게 가르쳐진 가치관은 시간이 갈수록 확고해지고 이것이 진리라는 신념체계를 이루게 된다. 결국 문화라는 것은 한 사회의 가치관을 아는 것 이라 하겠다.
과거에 비해서 권력자들은 피지배층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와 통치하는 수단이 줄어들었다. 이는 바로 무기체제의 발달로 무력 전쟁이 힘들어 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쟁은 인명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현대의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고 크나큰 피해를 남긴다. 따라서 권력자는 피지배층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더 많은 가치관을 유포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의 가치관이 과거 보다 훨씬 다양하게 생성, 유통, 소비 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효과는 어느 정도 일까?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생애의 마지막 10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수감기간 중 역사와 정치 분석을 기록한 노트 30여권을 남겼다. 이는 「옥중수고」라는 이름으로 후일 출판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대영제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힘의 근원이 문화라고 보았다. 영국의 무기가 인도에 비해서 월등하다고 해도 소수의 영국인이 거대한 나라인 인도를 지배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영국은 인도인의 “Habit of heart"를 장악했기 때문에 인도를 맘껏 유린할 수 있었다.
이처럼 문화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문화를 이루는 근간은 Value system과 Belief system이다. Value system과 Belief system의 하위 구성요소는 크게 종교, 민족, 이념으로 나눌수 있다.
Ⅲ. 문명의 충돌
서론에서 기술했듯이 냉전이 종식되고 이제 바야흐로 세계가 통합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을 때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란 저작을 발표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새뮤얼 헌팅턴은 저서에서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다. 바로 문화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이야 말로 진정으로 위험한 시대로 가고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의 승리, 서구문명의 세계 정복은 피상적 현상일 뿐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코카콜라는 세계 구석구석 안 팔리는 곳 없이 퍼져 나가고 영어는 모든 국제 활동의 공용어가 될 수도 있다. 할리우드 폭력물은 세계 시장 점유율을 계속 늘려 나갈 것이고 모든 나라의 대중가요가 미국노래 뒤를 쫒아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서구 문명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대중문화의 확산일 뿐이며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각 문명의 특질을 대표하는 정통 문화가 강화되리라고 그는 내다보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이 바라보는 장래 세계에서 경쟁과 대항의 주체는 ‘문명’이다. ‘야만’과 대비되는 보편적 의미의 ‘문명’이 아니라 언어, 종교 등 여러 가지 문화적 특질의 집합체로서 세계의 여러 지역에 자리 잡아 온 ‘문명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저서에서 문명권을 서구권, 유교권, 일본권, 이슬람권, 힌두권, 슬리브 정교권, 남미권, 아프리카권으로 분류했는데 특히 이슬람 진영과 유교권이 손을 잡는 상황을 서구 입장에서 심각히 우려할 사태로 간주 한다.
그는 냉전시대에 핵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던 이유를 ‘Racism'에서 찾았다. 냉전시대 큰 축을 이루던 미국과 러시아는 둘 다 백인종이다. Nie bhur는 인간은 빛의 자식과 어둠의 자식으로 나눠져 있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신의 자식인 백인과 그렇지 않은 흑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빛의 자식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핵을 발사하지 않았다. 갈등이 깊어졌던 시기에도 마지막에 서로가 같은 백인이라는 것에 시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서구권과 이슬람권이 충돌하게 된다면 극한까지 치달을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렇기에 이에 대비하고 서구의 가치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경제력과 군사력의 주지를 요청 한다.
이러한 헌팅턴의 관점으로 왜 미국이 그토록 북한의 핵에 대해 염려하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미국의 북핵 경계는 과도하리라 여겨질 정도이다. 오히려 한국은 북핵에 대해 담담한 입장이다. 미국은 비백인 국가인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핵 기술이 시리아와 이란에 전파되어 도미노효과로 더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핵을 갖게 될 경우 핵전쟁의 위험이 현실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Ⅳ.오리엔탈리즘으로 본 소통의 어려움
문명의 충돌론에서는 문명 간의 대립이 거의 필연적이라 보고 있다. 서로 다른 문명권 이지만 충돌 대신 대화로 해결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왜 서로 다른 문화 간에 소통의 어려운 것일까?
에드워든 사이드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으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오랜 편견이 그 동안 어떻게 학문과 이론으로 굳어져왔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양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은 서양에서 비롯된 것이며 서양이 흔히 동양을 신비롭고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서구의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우수한 권력과 지성을 이용하여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자신들보다 뒤처지는 동양을 폄하하며 지배, 소유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다. 즉,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침략과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진 이데올로기이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서구가 동양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관념을 다시 동양인에게 재교육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교육받은 동양은 서양의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것이 다시 고착되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 이는 일제의 식민사관교육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일본은 한국이 열등하다는 사관을 주입시키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자신이 열등하기 때문에 식민 지배를 받는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런 면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정의하여 보자면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동양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관념에 더하여 오리엔탈들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오리엔탈리즘의 표지는 상당히 눈을 끈다. 표지에는 벌거벗은 소년과 노인이 등장하는데 노인이 소년을 보고 흐뭇해 하고 있다. 서구가 생각하는 이슬람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이는 동성애나 관음증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것을 하나의 코드로 잡았다.
이 책에서 들어난 사이드의 주요 견해는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할례의식, 하렘, 관음증 등이 이슬람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고 덕분에 서남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생각은 남자들은 나약하고 비겁하며, 여자들은 항상 성적으로 준비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한 가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대표성은 고약한 우연에 의해서 선택된 것인가?”
대표성은 ‘일부분만을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이 특정한 사람 또는 사물의 전부라고 믿어버린다. 이러한 대표성의 문제가 다시 고정관념으로 굳혀지고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확고히 시켜줄 수 있는 것만 보려고 한다.
이러한 예는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서구권을 여행할 때는 가장 발전된 곳만 찾아다닌다. 만약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곳을 보게 되면 그것은 예외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치와 맞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것이 바로 서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서구는 이와 반대로 행동한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둘러보는 코스는 남대문 시장, 판문점 등 열악한 환경을 갖춘 곳만 찾아다닌다. 우리가 자랑하는 곳은 둘러보지 않는다. 그리고 서구인들의 기대와 다르게 발전한 모습은 애써 외면하고 남대문시장에 가서야 비로소 한국의 모습을 발견 했다고 기뻐한다.
대표성과 고정관념의 문제에서 신문을 들 수 있겠다. 사람들은 흔히 정보를 얻기 위해 신문을 읽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신문에서 정보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사람들이 신문을 읽는 일차적인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보수적인 사람들은 절대 진보적인 신문을 읽지 않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보수적 신문을 읽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이 확인대고 강화 될 때 희열을 느낀다.
이러한 대표성과 고정관념의 문제를 위에서 살펴본 문화의 속성인 Value system과 Belief system을 적용할 수 있다. 가치관은 지배층에 의해서 피지배 계층에 심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배층은 대표성에서 고정관념을 만들고 이를 재생산하여 피지배 계층을 지배한다.
여기서 고정관념에 대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일반 계층의 고정관념은 어떻게 변화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 스스로 고정관념을 변화 시키지 못한다면 언제, 어떻게 변화 되는 것인가?
대중은 스스로 가치관을 결정하고 변화시킨다고 믿지만 사실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도 지배계층에 의한 것이다. 그 근거로 토마스 쿤은 저작 ⌜과학구조의 혁명⌟에서 천동설이 지동설로 변경되는 과정을 들고 있다. 과거 기독교가 모든 것이던 중세 시대에 천동설은 강한 믿음 이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회전 해야만 하고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지배계층 내에서도 지동설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이를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에 이어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결국 지동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현재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동설은 이러한 변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지배층이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을 받아들인 후에야 대중들도 이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토마스 쿤은 이렇듯 Paradigm이 Shift 하는 것을 ‘혁명’이라 표현했다. 신념이 바뀌는 것은 혁명이 일어나는 것처럼 어렵다. 신념은 아무 때나 변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고무줄과 같다. 팽팽한 고무줄을 잡아당기면 탄력성으로 인해 늘어났다가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것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고무줄이 끊어지는 순간이 바로 신념이 변화하는 순간인 것이다. 고무줄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Anomalies라고 한다. 이는 기존 논리 쳬계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반복되어 나타날 때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Anomalies가 수없이 나타나야 겨우 Paradigm의 Shift가 일어나지만 이는 대단한 혼란을 수반하기 때문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지배층이 신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까지 버티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오리엔탈리즘에 적용하여 보자. 에드워드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1978년도에 발표된 이후로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이 깨지지 않았다. 최근 여러 형태의 Anomalies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지만 기득권층이 자꾸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서구신봉자이다. 그렇기에 오리엔탈리즘의 Paradigm Shift가 어려운 것이다.
Ⅴ. Henbert Marcuse의 ‘일차원적 인간’
문화와 문화 사이 간 또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소통이 어려운 이유를 Frankfort 학파인 Marcuse의 저서 ⌜One Dimensional Man⌟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현대 인간들이 일차원적 인간이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일차원적 인간은 자신과 다른 것은 배척하는 사람이다.
그는 일차원적 인간이 양산된 까닭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바로 교육과 미디어 이다. 많은 나라들이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Marcuse는 이러한 교육이 지배계급의 이념을 피지배층에게 세뇌시키는 과정이라 보았다. 미디어는 교육보다 더 큰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미디어는 바로 거대자본의 idealogy를 대중에게 보여준다. 미디어는 대중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알려준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본과 권력이 바뀌지 전에는 대중은 바뀌지 않고 대중들은 일차원적 인간이 되어간다고 보았다.
Ⅵ. 막스 베베 의 Verstehen
위에서는 문명이 충돌하는 이유와 왜 문화 간에 소통이 어려운지 살펴봤다. 인간에게 소통이 어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막스 베버가 제시한 Verstehen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자.
과거 칼 막스와 막스 베베 이전 학자들의 연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서,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 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떠한 사건의 겉모습 만을 살피는 것으로 그 속에 내재된 것을 알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시기에 막스베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눈에 보이는 현상을 설명’한다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였다. 빙산에서 눈에 보이는 부분이 Sufra인데 이는 일각에 불과하고 수면 밑에 감춰져 있는 Infra를 살펴봐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과거의 학문은 Information에 불과하지만 수면 밑에 빙산을 연구 함으로서 invisible 한 것을 Realization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Verstehen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1919년 막스 베버의 모국인 독일에서 ‘사회민주적 요건을 갖춘 최초의 헌법’ 이라는 평가를 받는 ‘바이마르헌법’을 도입하였는데 막스베버는 이것이 사회갈등과 투쟁을 발생 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러한 예측 하에서 Verstehen 사용되었고 이는 학계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Verstehen은 영어로 3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는데 under-stand와 respect와 self-humiliation이다. 이해를 이렇게 정의함으로서 갈등과 투쟁 상황에서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놓았다.
이처럼 문화 간에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길 밖에는 없다. 이 이해라는 것은 말만 앞세운 것이 아는 Vestehen이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하나만 보고 일부분이라 단정하지 말고 그것에 대해 항상 회의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이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는 등의 자세가 서구와 동양 문화와 문화 간에 소통을 하는 Key가 될 것이다.
Ⅶ.진리의 해체
이상으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문화 간의 대립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살펴보았다. 문화를 이루는 Value system과 Belief system은 자신과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진리가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Truth의 어원은 ‘현실적으로 감추어 지지 않고 드러내는 것'과, ‘좋은 것' 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후대로 전해지면서 ‘무엇이 더 옳은 것이고,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 찾는다.’는 가치판단에 더하여 ‘주장하다’는 뜻이 합쳐저 현재의 Truth의 의미가 되었다. Truth는 단 하나의 가치관 밖에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진리 자체가 고정관념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진리라는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것이 문화를 Vestehen 하는 길이 될 것이다.
아래 자료는 문명의 충돌 요약본입니다.
출처 : 한 숨 돌리고픈 휴게소...글쓴이 : 리어왕 원글보기메모 :'세계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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